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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2-07-01 18:25

  • 박스기사 > 살며 생각하며

가오리회무침

기사입력 2022-01-2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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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산의 나무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처연한 모습으로 서 있다. 보이지 않던 골짜기의 크고 작은 바위들이 보이고 무성했던 숲은 휑하니 속살을 다 보인다. 그래서 겨울산은 더 정겹다.

며칠 전 도방동(부북면 위양리) 뒤 산길을 따라 반딧불 마을까지 걸었다. 꼭 일 년 전 이맘때도 같은 길을 걸었는데 그때는 눈길을 걸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나목의 마른 가지에 얹혀있는 잔설과 파란 겨울하늘을 한꺼번에 보며 산길을 걷는 것은 어쩌면 행운일 수도 있다. 올 겨울에는 아직 눈 내린 산길을 걸어보지 못했다. 그날은 차갑고 맑은 전형적인 겨울 날씨였다. 가다가 중간쯤에서 마주 오는 어떤 부부와 마주쳤다. 인적이 드문 산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참 반갑다.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는 반딧불 마을에 간다고 했더니 자기들은 그 마을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서로 갈 길을 갔다.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너무도 평온 해 보이는 깊은 산 속 마을이다. 인적도 없고 낯선 사람을 보고 짖어대는 강아지도 없다. 온통 적막이었다. 어느 집 지붕 위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무 타는 냄새가 반짝이는 겨울 햇살을 타고 번져나가고 있었다.

돌아오면서 갈 때 만난 부부를 다시 만났다. 그만해도 두 번째 만남이라 제법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내에서 장을 보았다고 한다. 맛있는 것을 사셨느냐고 물어보았다. “일찍 해가 떨어지는 산속의 겨울밤에는 뭐니 뭐니 해도 가오리회무침에 막걸리 한 잔이 최고지요라고 한 마디 던지고는 곧장 가던 길을 갔다. 갑자기 가오리회무침이 너무 먹고 싶었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을 먹던 아주 오래전 이야기다. 겨울밤에 어쩌다 한 번씩 밤공기를 가로질러 얼음처럼 맑고 투명하게 들려오던 귀에 익은 소리. ‘가오리 사려, 가오리 사려’. 어머니는 주섬주섬 치마를 두르고 가오리를 사러 마당으로 나서며 무 하나만 내 놓으라고 내게 부탁 하신다. 나는 마당 한 귀퉁이에 땅을 파서 묻어 놓은 무 단지 위의 짚을 걷어내고 뚜껑을 열고 그 속의 차가운 무 하나를 꺼내 든다. 추위에 온몸을 부르르 떨며 어두운 부엌으로 간다. 어머니는 잠시 어둠을 밀어 내고는 순식간에 맛있는 가오리회무침을 만들어 내신다. 가오리를 씻어 횟감으로 만들고 또 무를 썰고 양념을 해서 잘 비벼 내시는데 정말 눈 깜박할 사이에 이 모든 과정을 다 끝낸다. 그때는 밥 먹는 것 말고는 간식이라는 게 따로 없었으니 저녁을 먹은 지 한참을 지낸 밤에는 얼마나 시장하기도 했을까. 겨울이면 아버지가 너무 좋아하시던 음식이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머니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모두가 가난하고 먹을 것이 귀했던 아주 오래 전 겨울 밤. 아버지 옆에서 얻어먹었던 가오리회무침이 평생 동안 늘 먹고 싶은 그리운 음식이 되었다. 일찍부터 객지로 나가서 학교를 다녔고 또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어머니 손맛으로 비벼진 가오리회무침을 한동안 먹을 수 없었다.

결혼을 해서 첫 아이가 태어났다. 맞벌이 하느라 장모님이 우리 집에 와서 아이를 키워주셨다. 이어서 둘째 아이가 태어났고 그렇게 12년을 우리와 함께 생활하셨다. 아이 둘을 초등학교 5학년, 2학년이 될 때까지 보살펴 주시다가 일흔셋이 되던 해에 서울에 살고 있는 아들 집으로 가셨다. 장모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을까! 함께 계실 때 좀 더 자상하게 보살펴 드리지 못한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두고두고 많이 후회된다. 벌써 돌아가신 지도 10 년이 가까워 온다.

첫째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2학년 쯤 되던 겨울 어느 날이었다. 그때 우리는 5일장이 서는 시외버스 터미널 부근의 단독 주택에 살았다. 그날도 5일장이 서는 날이었다. 내가 가오리회무침이 먹고 싶다고 했더니 아내는 싱싱한 가오리를 사기 위해 장모님과 같이 장터로 나갔다. 장을 보고 들어오는 아내의 손에 장바구니와 함께 하얀 쪽지 한 장이 들려있었다. 아내는 박장대소를 하며 내 앞에 쪽지를 내밀었다. 쪽지에는 연필심에 침을 묻혀 가며 한 글자씩 굵고 진하게 눌러 쓴 글씨가 적혀있었다. 너머집삽짝거리에 와 차로 대난노> 장모님께서 우리 집 대문에 붙여놓은 쪽지 글이었다. 장날이면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집 대문 앞에 차를 바짝 붙여 세워두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붙여놓은 쪽지였다. 우리 부부는 장모님의 글을 쉽게 읽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적당히 띄어 읽기를 하면서 자세히 보아야 이해가 가능하다.

나는 내 어머니의 가오리회무침과 장모님이 해주시는 가오리회무침의 맛을 거의 구별하지 못한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어머니의 가오리회무침 맛을 장모님이 우리 집에 오시게 되면서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장모님은 가오리회무침은 물론이고 미더덕 찜과 토란국도 정말 맛있게 만드셨다. 그날 오일장에서 사 오신 싱싱한 가오리로 만들어 주신 회무침은 정말 맛있었다. 지금도 우리는 가오리회무침을 맛있게 먹으면서 쪽지의 글을 식탁 위에 내 놓고 식구대로 마음껏 웃었던 그날의 기억을 가끔 불러오곤 한다.

반딧불 마을에 다녀오던 그날, 가오리회무침이 먹고 싶어서 아내에게 당신 가오리 회 무침 한 번 해보지 않겠어요?” 라고 물어보았다. 자신이 없으니 그냥 시켜서 먹자고 했다. 아내의 솜씨를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날씨도 춥고 귀찮아하는 듯해서 가까운 식당에 주문했다. 무를 좀 많이 썰어 넣고 식초도 좋은 것으로 넣어서 맛있게 해달라고 미리 부탁했다.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맞춰 찾아왔다. 짧은 겨울 해는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우리 집 마당에도 어둠이 내렸다. 식탁에 둘이 마주보고 앉아서 막걸리도 한 잔씩 곁들여 먹기 시작했다. 오늘도 역시나 내 기억속의 그 맛은 어디에도 없었다. 갑자기 어머니와 장모님이 그리워진다. 이제 옛날 입맛도 좀 잊어버릴 때가 되었는데 갈수록 더 새롭게 생각나기만 하니... .

! 그 겨울의 가오리회무침이여.

어머니와 장모님께 며칠씩 번갈아 다녀가시라고 편지를 보내고 싶지만 주소를 알 수 없다. 편지를 보낸들 살아생전 살갑게 모시지 못한 자식에게 오실 리가 있으랴.

 

정상진/前 밀양초등학교 교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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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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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0
  • 정복린
    2022- 02- 20 삭제

    지난 일들이 새록새록 지금의 자리로 찾아옵니다. 그리운 시절의. 어머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렇게도 끝없이 주시려고만 했었던지....가오리 회무침에 저의 추억도. 항께 오버랩되네요. 어느새 사모님과 함께 만드셔서 자식입에. 넣어주시며. 그 추억을 기억하도록. 할 때가 되었네요.

  • 하영규
    2022- 01- 28 삭제

    가오리회무침 막걸리 한잔 일품이지요? 감종입니다.

  • 이일미
    2022- 01- 27 삭제

    어머님과 장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너무나 곱고 따뜻한 사랑으로 살아가시는 두분의 삶 존경합니다.

  • 김경희
    2022- 01- 27 삭제

    겨울밤 가오리회무침~♡ 지나간 추억까지 불러오네요 울림있는 글 잘 읽고 갑니다

  • 김경희
    2022- 01- 27 삭제

    겨울밤 가오리회무침~♡ 지나간 추억까지 불러오네요 울림있는 글 잘 읽고 갑니다

  • 김재언
    2022- 01- 27 삭제

    제가 그 맛을 한 번 보여 드릴까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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