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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2-05-26 15:25

  • 박스기사 > 수필단상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

기사입력 2022-01-1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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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긴 기간 동안 여행을 하지 못했다. 이곳저곳이 궁금하고 안 가본 곳은 가보고 싶고 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그다지 갑갑하다는 느낌 없이 코로나가 지배하는 세상을 살아왔는데, 그 기간이 너무 길어서일까? 드디어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들기 시작한 거다.

키 크고 오래된 나무들이 양편에 늘어서 있는 사찰의 진입로를 세상 편한 걸음으로 걸어보고 싶기도 하고, 대나무 숲이나 소나무 숲, 또는 이런저런 나무들이 하늘을 다투는 수목원을 느릿느릿 거닐고 싶기도 하다.

어디 좋은 물가에 좋은 사람들과 자리 잡고 앉아 진종일 떠들고, 먹고, 웃고 하는 시간도 좋을 듯하고, 가능한 멀리 있는 곳의 펜션에서 떠들썩한, 그러나 불편한 하룻밤도 좋을 듯하다.

이 고장 저 고장 맛집을 수소문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 소문난 집답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음식점 앞에서의 줄 서기도 싫지 않을 것 같다. 할 수 없으니 더 하고 싶은 것일까?

모든 것의 처음은 잊히지 않고 기억의 한 켠에 자리 잡고 앉는다. 여행도 마찬 가지이다. 처음으로 여행이라고 이름 할 수 있었던 것은 라떼의 사람들이 다 그렇듯 수학여행이다.

배우고 마음을 닦는다는 목적에 딱 들어맞는 경주가 여행지였는데, 푸른 하늘과 맞닿은 불국사의 지붕선과, 다보탑과 석가탑의 섬세함과, 입구 계단의 멋스러움과, 석굴암을 향해 걸어가는 길가의 싱그러운 나무들과, 그들이 만들어 주던 시원한 그늘에 대한 기억은 불행히도…… 없다.

대신 여행 기간 내내 내 몸을 지배했던 들뜸과, 잠 못 이루게 했던 잠자리, 아침에 시동이 걸리지 않는 고물 버스를 밀던 일, 팔걸이조차 없는 버스 의자에서 졸다 회전을 하면 통로로 굴러 떨어지던 친구를 보며 웃었던 일 등이 첫 여행의 기억을 점령하고 있다.

첫 비행기 여행은 신혼여행이었다. 또다시 라떼인데, 당시에는 거의 대부분 제주도가 여행지였다. 첫 비행의 설렘과 약간의 공포심이 겹쳐진 긴장감이, 신혼답게 꼭 잡고 있던 우리 부부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매우 촌스럽게.

제주도에 대한 기억은 가이드가 몇 분까지 버스로 돌아오라고 했던 안내 멘트와, 모든 관광지를 다 돌아볼 것 같았던 빡빡한 일정으로만 기억으로 남았다. 수학여행스러운 관광버스와 함께.

첫 외국 나들이는 얼마나 큰 기대감이었는지 모른다. 무슨 준비물이 그리도 많았는지…… 고추장 통조림에 깻잎절임까지 챙기고서야 끝이 났다.

상하이가 여행지였는데, 후텁지근하게 얼굴에 달라붙는 공기도 불편했고,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그곳의 냄새도 생경스러웠으며, 무엇보다 힘든 건 고추장과 깻잎이 없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싶게 만든, 느끼하고 향신료 냄새가 깊이 배어 있는 음식이었다. 일행 중에는 구토하러 뛰쳐나가는 이도 있었으니.

이제는 어느덧 여행에는 숙달된 조교가 되어있다. 어디를 가더라도 먹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모든 여행의 경험은 처음임도 알고 있다. 처음 방문한 곳이기 때문에, 처음으로 함께하는 여행이기 때문에, 생애 처음 맞이하는 시간과 함께하는 여행이기 때문에.

일상은 편안하지만 그 일상이 반복되면 그리워지는 게 여행이다. 이제 곧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돌아오면 떠나 보리라.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이 주는 설렘과 들뜸을 찾아서.

그리고 산다는 것도 일상과 설렘을 번갈아 하는 여행일 테니.

 

김종열/前 농협 밀양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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