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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2-05-27 15:40

  • 박스기사 > 낙숫물소리

서정성의 강요

기사입력 2022-01-1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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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든다는 것은 서정적 감성이 무뎌지는 과정은 아닐까. 코로나로 누적된 피로와 먹통 수신음에 지쳐 뒤늦게 코로나 블루를 심하게 앓고 있다. 거울 속의 그로테스크한 얼굴 상큼했던 미소는 어디로 가고, 어느새 그저 그런 중년의 부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쓸쓸함만 남은 느낌이다. 건조해진 피부는 잔주름을 잡아가기 시작했고, 아무리 감추려 해도 짙게 드리운 허무의 그림자와 생기를 잃은 표정에 미소를 담아내기가 쉽지 않다. 모두를 감싸 안을 수 있는 포용과 여유를 담아 수용할 내면의 공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긴장감마저 든다. 이런 내적 갈등들은 고스란히 글 속에 드러날 수밖에 없는가보다.

얼마 전 어느 독자로부터 요즘 글이 드라이해지고 있다는 평을 들었다.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든지 독자의 몫이며 작가는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 독자의 평가는 생각보다 폭이 넓고 자유로우며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드라이하다는 표현이 내포하는 여러 가지 부정적 뉘앙스 때문인지 몹시 불쾌함을 느꼈다. 도대체 글의 어떤 부분이나 표현이 그런지. 콕 집어 말해 달라고 따져 묻고 싶었다. 몇 번이나 꼼꼼히 분석하며 날카롭게 평론가적 시각으로 훑어보았다. 그러나 드라이하구나 하고 느낄 만한 부분을 찾지 못 했다. 이 또한 스스로의 편협함이겠지만, 이런 소심한 아집이 작은 것도 용해시키지 못 하는 태도가 드라이함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글을 쓰는 작업은 때로 정신을 갉아먹고 피를 말리며, 심장을 옥죄는 부담을 줄 때도 있다. 까닭 없이 히스테릭해지고 예민해져서 심지어 주변 사람들까지 괴롭힐 때도 있다. 무슨 명작이나 대작을 집필한다고 유세인지 소위 예술가입네 하는 꼴을 자인하는 셈이다. 그만큼 생각의 모서리를 갈고 다듬어 글로 엮어내는 작업이 감당해야 할 무게가 가볍지 않다. 두드린다고 해야 할지 민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울지, 음절의 숫자까지 세어가며 숙고하는 퇴고의 과정 자체가 작품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그렇다. 에계계 고깟 글 쓴다고 그렇게 힘들었다고? 하는 비웃음마저 감수해야 하는 부담감의 무게. 아이러닉하게도 글쓰기가 즐거운 통증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통증을 스스로 즐기고 음미하는 것은 작가만이 갖는 특권이자 독특한 카타르시스의 일종이 아닌가.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강박을 강요받는 일. 그래서 글쓰기 작업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희열을 보장받는다는 점에서 산고의 고통에 비유되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아이를 뱃속에서 열 달 동안 키워내는 일은 위대하고 존엄한 신비다. 모든 엄마들이 그 화려한 고통을 즐거이 감내하는 이유는 오직 생명을 잉태해낸다는 숭고한 사명의 방식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아름답고 예쁜 것만 보고 귀하고 반듯한 생각만 하며 바른 성품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기를 바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고들 한다. 그런 내 자식을 누군가가 못 생겼다고 폄하거나 평가절하 한다면 정말이지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오래 전에 읽었던 파스트리크 쥐스퀸트의 소설 깊이에의 강요라는 소설은 평론 공부를 할 때 나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안겨준 작품인데, 최근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어떤 글이든지 활짝 열린 마음으로 근거를 들어 조목조목 신랄하게 평가 받기를 즐긴다면 작품성이 더욱 발전할 기회가 되겠지만, 뚜렷한 근거가 없는 단순 평가는 때때로 매우 위험하고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더구나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갖는 위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귀한 작품으로 평가 할만하다. 짤막한 장편소설(掌篇小說)이 주는 메세지가 무척 강렬했기 때문이다. 작가와 작품이 별개일 수도 없지만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하는 오류도 경계해야 함을 새삼 되짚어보게 되었다.

 

정희숙/(사)기회의 학숙 총무이사,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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