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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2-05-2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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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에 온 여승(女僧)-9

기사입력 2022-01-13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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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운명의 그림자

석양에 온 여승(女僧)-9

 

그때, 그 사내는 이 말을 지나가는 말처럼 흘렸지만, 임오군란에 대하여 맺힌 것이 있는지 그의 말 속에는 가시가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박씨 부인은 중산의 그런 얘기를 듣고서도 별로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옛말에 때린 자는 쉽게 잊을 수 있어도 맞은 자는 평생토록 잊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요. 그러니 아직도 임오군란 때의 일로 한이 맺힌 예전의 군병들이나 그 후손들이 의병 부대와 독립군 부대에서 활동하면서 우리의 왕조복고 운동을 방해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감내 게줄 당기기> 놀이마당에서 나라를 망하게 한 책임 문제를 놓고 비분강개하면서 황실은 물론 우리 여흥 민씨 척족들과 권문세도가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을 보면, 임오군란 때의 원한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보다 훨씬 심한 해꼬지를 할 수도 있겠구려!”

그러면서 중산은 비로소 천기에 버금간다던 운곡 선생의 서찰 얘기를 비로소 입에 담는 것이었다.

여보, 사실은 지난 단옷날 운곡 할아버님을 찾아뵈었을 때, 천기에 버금간다는 밀서를 전달받아 용화 할머님께 전해 드린 바가 있었다오.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그게 마음에 걸리는구료. 왜냐하면 지난 정월 달에 <광복단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그동안 비밀결사 활동을 벌여 왔던 전국 각지의 지부와 연락소에서 활약하던 주요 인사들 대부분이 왜놈 경찰과 헌병들한테 체포를 당하게 된 것도 동족인 우리 동포의 밀고 때문이었다고 하니 말이오!”

중산이 말한 바와 같이, 19133월에 풍기 한림촌의 채기중이 중심이 되어 <풍기 광복단>이란 이름으로 국내 최초의 독립운동 단체로 첫 발을 내디뎠던 <대한광복단>이 소위 광복단 사건으로 전국의 조직망이 와해되면서 최후를 맞이하게 된 것도 바로 천안의 이종국이란 우리 동족의 밀고가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 사건의 진행 과정은 대강 이러하였다. 지난해 11월에 채기중, 유창순, 강순필 등이 경북 칠곡의 친일 부호인 장승원을 처단한 후 曰維光復天人是符聲此大罪戒我同胞 聲戒人 光復會: 외치는 바는 광복이다. 하늘과 사람이 도리에 일치된다. 너의 큰 죄를 꾸짖고 우리 동포에게 경고를 주노라. 꾸짖고 경고하는 자 광복회)’라는 격문을 붙인 바가 있었으며, 올해 124일에 또다시 충남 아산군의 도고면장 박용하에게 사형 선고문을 제시하고 처단함으로써 <대한광복단>의 존재가 만천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전국 도처의 친일 지주들의 집에도 그와 유사한 취지의 격문들이 투입되기 시작하였는데, 문제는 중산의 집 후원에서도 그런 경고성의 격문이 몇 차례나 발견된 적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왕조 복고운동에 부심하고 있는 줄을 알고 있으면서도 왜놈들이 지역 제일의 부호인 점을 들어 강제로 떠맡긴 지주총대를 뿌리치지 않고 그대로 맡고 있다는 이유로 그렇게 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191712월에 동족인 천안의 이종국이란 자가 천안경찰서에 밀고하는 바람에 <대한광복단>의 전적인 조직망이 발각되는 사태가 벌어진 바가 있었으며, 그것을 토대로 이루어진 우편물의 검열로 인하여 지난 1월 달에는 그동안 극비리에 활약해 온 암살단과 주요 인사들 수십 명이 체포 구금되었고, 가까스로 화를 모면한 김좌진, 노백린을 비롯한 나머지 인사들마저 모두 중국으로 망명하는 바람에 <대한광복단><풍기 광복단>으로 출발한 지 만5년 만에 와해지경에 이르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부인의 얘기를 듣고 보니 임오군란 때 집안이 풍비박산이 된 당사자들이나 그 후손들이 원한을 품고 우리 복벽파 유림들과 우리 문중의 왕조복고 운동에 대해 음해하려는 자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니 사실은 나도 심히 걱정이 되는구료!”

하지만 박씨 부인은 그런 사실마저도 이미 간파하고 있었는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의미심장하게 묻는 것이다.

서방님, 그렇다면 용화 할머님께서 올리시는 이번 표충사의 천도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 건가요?”

글쎄요. 표충사는 이름 그대로 충의정신이 깃든 호국 사찰로서 그곳 표충서원에 사명대사를 비롯한 의승대장 세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어 해마다 밀양 유림에서 사찰 측과 합동으로 추모 제향을 올리고 있는데다가, 그곳 명부전에 사십구제 때 사용하였던 승당 할아버님의 위패를 지금까지 모셔놓고 있지 않소? 그리고 청관 스님이 입산하여 사명대사의 직계 법손이 된 곳도 표충사이고 승당 할아버님께서 의거 순절하신 곳도 그 인근에 있는데, 용화 할마니께서는 왜 하필이면 시국이 칼날과 같은 이런 때에 그곳에서 천도제를 올리기로 하신 것인지 아무래도 예사롭지가 않아서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구료!”

중산은 거기에 대한 부인의 생각이 어떠한지가 더 궁금하여 대충 그 정도로만 얘기하고 나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

서방님은 용화 할머님이 표충사에서 천도제를 올리기로 하신 것이 단지 그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중산이 까닭을 몰라 아무 말이 없자 박씨 부인은 짐짓 낙담한 듯이 수심에 찬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피력하는 것이었다.

서방님, 친정아버님께서는 우리 밀양 유림의 일각에서도 나라를 되찾아 왕조를 복원하려는 복벽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라를 되찾아 왕조를 복원하려는 뜻이 누구보다도 간절하실 용화당 할머님과 중사랑 시아버님께서 우리도 모르게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 부분도 있지 않겠습니까? 해천껄 친정아버님께서 크게 우려하고 계시는 까닭도 사실은 그 때문이 아닐는지요?”

 

정대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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