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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2-05-26 15:25

  • 박스기사 > 수필단상

개세이(3)-또 하루 멀어져 간다.

기사입력 2022-01-0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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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다. 할배, 할매가 세수를 한다, 청소를 한다, 밥을 준비하는 등 부산스러울 때, 나는 따뜻한 이불속에 가만히 누워있다. 사람들이 바쁠 때 그 앞에서 알짱거려 봐야 좋은 일도 없거니와, 따뜻한 이불위에서 뒹구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사람들은 누리기 힘든 강아지들만의 특권 같은 느낌이 드는

식사를 시작하면 슬그머니 일어나 식탁으로 발길을 향한다. 물론 내 밥은 당연히 준비되어 있지만, 나는 결코 그것을 먼저 먹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내 밥은 뭐랄까? 좀 밍밍한 느낌이고 그래서 맛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먹는 음식은…… 거의 대부분 맛있다. 각종 고기류, 고구마, 감자, 황태, 계란, 요구르트, 우유, 사과, 딸기 등.

타고 난 미모와 애교, 불쌍한 척하는 눈동자, 앞발로 긁어대는 간절함과 조르기, ‘~’하는 슬픈 목소리 등, 내가 가진 모든 필살기를 동원하여 할배, 할매의 음식을 챙겨먹고, 그들이 설거지를 시작하면 내 밥으로 모자란 배를 채운다. 약았다고? 아니 현명한 거지.

할배, 할매가 집을 나설 때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나가는 길목을 막고 서서 뭐 잊은 거 없수?’하는 눈으로 쳐다보기이다. 내가 이러지 않아도 간식을 주고 가면 될 텐데, 굳이 이런 퍼포먼스를 해야만 주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만, 어쨌든 사람이나, 강아지나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해야 하는 법이니까. 나는 그렇게 30분쯤을 물고 뜯을 수 있는 개 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개 껌 씹기가 끝나면 할 일이 뭐 있겠는가? 집을 지킬 일도 없고, 아파트라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도 없으니 짖을 일도 없고, 그러니 잠을 잘 수밖에. 가끔은, 아니 자주, 내게 하루에 18~19시간을 잘 수 있는 능력을 주신 신에게 감사드린다.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는 베란다에서 해바라기를 하거나,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리며 침대 위에서 뒹굴거나, 할배 책상 의자 위에 웅크리고 있거나, 그렇게 졸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하루의 길이는 얼마나 길었을까?

그래서 할배, 할매가 돌아 올 시간이 가까워지면 현관 밖의 작은 움직임과 소리에도 촉각을 세우게 되고, 드디어 그들이 삐비빅하며 도어락을 누르면 반갑고, 반가울 수밖에 없고, 또 반가워서 꼬리를 흔들고 폴짝폴짝 뛰면서 그들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의 따뜻함과, ‘아이고 잘 있었어?’하는 목소리의 울림은 얼마나 달콤한지, 그리고, 그렇게 신나는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예쁜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길 가 전봇대에 배어 있는 강아지들의 쉬야 냄새, 키 작은 나무나 풀잎의 싱그러운 향기, 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냄새에 벌렁거리는, 아니 벌렁거려지는 코를 주체할 수가 없고, 착착착 내딛는 경쾌한 발걸음의 산책길은 그래서 가장 즐거운 하루 일과이다. 산책 후 나른한 피곤함이 잠자리를 더욱 포근하게 만드니 더 더욱 좋을 수밖에……

그렇게 또 하루가 멀어져 간다.

 

*개 세이(+에세이, +say)는 반려견의 관점으로 쓴 에세이입니다.

 

김종열/前 농협 밀양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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