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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2-05-27 15:40

  • 박스기사 > 소설

석양에 온 여승(女僧)-8

기사입력 2022-01-0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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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친정아버님으로부터 듣기로는 승당 할아버님 곁에서 시중을 들었던 그 노비는 참수를 당한 부친이 비록 부하 군병들이 선혜청 도봉소를 비롯하여 동별영(東別營)과 경기감영(京畿監營)의 무기고를 습격하고 우리 민씨 척신과 개화파 관료의 집을 습격하는 폭거를 일으키는 바람에 억울하게 반란군 수괴로 엮이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그 바람에 자신은 노비의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행실이 음전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무반의 여식다운 여인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랬던지, 그가 낳은 서자도 여느 명문대가의 귀공자들 못지않게 어려서부터 영특한 천재성을 보였다고 하고요.”

그런 까닭으로 승당 대감도 적자나 다름없이 무던히도 귀여워하면 서 어릴 때부터 시간이 나실 때마다 무릎에 앉히고 천자문을 비롯하여 소학동몽선습을 가르쳤으며, 표충사 인근의 토굴 움막에서 은둔생활을 할 때도 제자백가의 각종 경서와 병서들까지를 몸소 가르쳤다는 것이다. 또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낙향하실 적에도 무반의 여식에서 노비로 전락하여 당신의 자식까지 낳아 기르면서 성심으로 받들어 모신 기구한 운명의 여인에 대한 보상으로 한양 북촌의 대궐 같은 사저를 물려주고 제반 생활의 여건까지 부족하지 않게 마련해 주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특별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승당 대감이 망국의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나고 나자 그 하녀는 노후의 안락을 취하지 않고 북촌 저택을 비롯한 그 모든 유산들을 절간에 시주로 내놓고는 아무 미련도 없이 머리를 깎고 중이 된 것을 보면, 예사로 보아 넘길 수 있는 여인은 결코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분이 그렇게 한 것도 무반의 딸로서 지난날 겪었던 은원(恩怨)의 소산일 수도 있겠고, 다른 한편으로는 임오군란 때 선혜청 도봉소를 습격하고 그 당시 선혜청 당상 겸 병조판서로 계시던 민겸호(閔謙鎬) 대감을 살해한 부하 군병들의 발호를 사전에 차단하지 못한 죄목으로 참수된 부친 때문에 노비 신세가 되고만 자기네 자매를 거두어 생활의 지붕이 되어 주셨던 승당 할아버님에 대한 보은 정신에서 비롯된 인간적인 선택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하셨지요.”

장인어른의 생각대로 그게 사실이라면 오죽이나 좋겠소? 그러나 그들 모자의 뜻과는 상관없이 임오군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군병들과 피해를 입은 주변 사람들의 원한 맺힌 끈질긴 발호가 이제도 계속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드니 더욱 큰일이 아니겠소?”

서방님, 그렇게 걱정부터 먼저 하실 일이 아니라 저희 친정아버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기막힌 과거사 얘기를 소상하게 말씀해 주신 의도가 무엇인지 그것부터 먼저 되짚어 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는지요? 왜냐하면, 승당 할아버님의 피를 받아 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그 서출 자식이 사명대사의 법통을 이어 받아 출중한 청년 학승이 되어 다시 나타났다는 말씀을 듣고 그런 인물이라면 왕조복원 사업에 절치부심하고 있는 우리 가문에 실보다는 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셨을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청관 스님의 외가 집안에 임오군란 때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원한으로 아직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자가 있음을 감지하셨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요.”

그렇다면 장인어른께서 우리를 따로 불러서 청관 스님의 애기를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하신 까닭도 비록 서출이지만 사명대사의 직계 법손으로서 위풍당당한 청년 학승이 되어 돌아왔으니 한번 만나 보는 것이 같은 혈육으로서의 도리가 아니겠느냐는 뜻이 아니라, 윗분들께서 아직도 못 풀고 있는 숙제가 있을 수가 있으니까 우리더러 윗분들 모르게 대신 알아서 처리해 드리게 하려는 뜻이었다 그 말씀이오?”

그렇답니다, 서방님! 윗대에서는 역사적인 혼란 속에 그런 엄청난 불상사가 일어나 원한과 반목의 세월을 살아 왔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왜놈들 식민지 치하에서 양쪽 모두가 같은 운명에 놓인 동족으로서 고통을 함께 겪고 있는 처지가 아닙니까? 그러니 가문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문중 종손인 우리가 나서 가지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마음으로 윗대의 아픔을 걷어내고 서로 화합하여 광명한 새 시대를 열어 나가도록 숙제를 내 주신 것으로 보는 것이 어느 모로 보나 이치에 합당할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렇잖아도 왕조복고 운동 이외에는 내가 아버님을 대신하여 당주 일을 챙기고 있으니까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구료! 하지만 윗분들 모르게 문 밖으로 운신하기도 어려운데 조선 천지의 명산대찰들을 찾아 뜬구름처럼 돌아다니며 탁발 수행 중이라는 청관 스님을 무슨 수로 만난단 말이오? 더구나 지난 단옷날 무봉사에서 운 좋게 만났다가 면전에서 보기 좋게 따돌림을 당하고 말았는데!”

그러면서 중산은 가시처럼 목에 걸리던 얘기 하나를 이제야 비로소 부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부인, 만시지탄이 없지 않으나 내 얘기를 한번 들어 보시오. 사실은 지난 단옷날 친정으로 가는 당신과 헤어져 감내 마을에 갔을 때, 겹겹이 에워싼 <감내 게줄 당기기> 구경꾼들 속에서 조선 황실을 비롯하여 지난날 권력의 실세였던 우리 척족들과 권문세가들을 두고 나라를 말아먹고도 누구 하나 책임을 지고 나서는 자가 없다며 나를 지척에 두고 고성으로 싸잡아 비난하는 낯선 중년 사내가 있었다오. 그래서 그자한테 대드는 김 서방을 제지하고 나서 세상인심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알아 볼 요량으로 정중하게 객줏집으로 데려고 가서 주안상을 앞에 놓고 대작을 하면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게 되지 않았겠소! 그런데 말이오. 내가 동산리에 사는 여흥 민씨 종가의 종손이라고 신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신의주에서 미곡상을 하면서 대종교 사교 노릇을 하고 있다고 자기를 소개한 그 사내가 나한테 대놓고 그럽디다. 지난 임오년에 무위영 소속의 구훈련도감 군병들이 선혜청 도봉소를 습격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던 척족정권의 실세였던 여흥 민씨 일파가 나라가 망한 지금까지도 향리 곳곳에서 가세를 유지하면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얘기를 자기도 이미 듣고 있었다고 말이오!”

 

정대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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