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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儒宗)의 고향(3)

[2019-11-11 오후 4:30:51]
 
 
 

제2장 일락서산(日落西山)

유종(儒宗)의 고향(3)

 

사실, 이 놀이의 유래에 얽힌 전설에 관한 옛날 얘기는 유년 시절에 이따금씩 그를 데리고 예림서원으로 행차하시던 부친한테서 처음으로 들은 바가 있었다.  
게다가 그가 예림서원의 경학원에 입문하면서부터 아마(兒馬)의 고삐를 잡고 길잡이로 따라 다녔던, 이 마을이 고향인 김 서방한테서도 여러 차례나 들은 바가 있었고, 또한 함께 구경까지 한 적도 있는 것이다.
 그가 들은 바에 의하면, 점필재 선생이 탄생한 이후에 마을 앞 냇물에서는 사흘 동안이나 내리 단물이 흘렀고, 그로부터 달라진 좋은 물맛 때문에 해마다 민물 게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곳 감내 마을 사람들은 그 게를 더 많이 잡기 위하여 위·아랫마을 사람들끼리 패가 갈리어 서로 좋은 목을 차지하려고 다투기 일쑤였고, 그 바람에 자연히 마을 인심도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마을 어른들이 숙의한 끝에 <게줄 당기기>를 하여 그 결과로 구역을 할당하기로 했는데, 과연 그 후로부터 두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반목하는 폐단이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해마다 열리곤 하였던 그 <감내 게줄 당기기>를 오늘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하니 그 행사가 점필재 선생의 출생 설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중산으로서는 여간 아쉽고 애석 하지가 않는 것이다.
 하기야 예전에도 농한기인 정월 대보름날이 아니더라도 단옷날이나 칠월 백중날 같은 명절을 택하여 다리를 놓거나 보(湺)를 고치는 일 등의 부역을 걸고 이 놀이를 간혹 했기 때문에 정월 대보름에 했다고 해서 단오절에 다시 못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왜놈들의 군중  집회금지 조처에 묶여서 조상 대대로 즐겨오던 이와 같은 유서 깊은 민속놀이마저도 앞으로는 일체 열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고, 중산의 아쉬움 또한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이보게, 김 서방. 자네 게줄 당기는 구경을 못할까봐 걱정인 게로구먼?”
중산이 농담 삼아 한마디 했더니 김 서방은 당나귀 채찍을 든 손으로 손사레를 치면서 완강하게 거부 의사를 나타낸다.
“아, 앙입니다요! 게줄 당기기 놀이 귀경은 수도 없이 했는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껴?”
“그러면 되었네! 몸이 다소 고단하더라도 고달픈 민초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오늘은 특별히 좀 참아 주게!”
“거기까지 갔다가 서방님께서 게줄 당기기 귀경을 못해도 괜찮으시다면야 소인은 길바닥에 널브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괜찮습니다요. 그런데 서방님, 나중에 집으로 돌아갈 때는 하감 나루에서 배를 타실랍니껴?”
날이 저물면 말과 나귀를 타고 어두운 길을 가야하고 험한 고갯길도 넘어야 하는데, 그런 육로보다는 짐승과 사람이 함께 타고 갈 수 있는 황포돛배가 제격일 터였다.
“아마도 그래야겠네!”
그런 말을 하면서도 중산의 머릿속에서는 집안일에 대한 생각이 잠시도 떠나지 않고 있었다. 하남벌과 상남벌의 전답 대다수를 나누어 소유한 자기네 동산리와 파서리의 여흥 민씨가에서도 수많은 소작인들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양쪽 종가 합동으로 <감내 게줄 당기기>와 같은 민속놀이를 한번 도입해 치러 보면 어떨까. 자기네 집안의 하인들과 머슴들이며 소작농들은 물론, 인근 마을의 일반 민초들까지 한데 모아 넉넉히 상품을 걸어놓고 풍물을 울리면서 풀베기 시합이라도 한번 벌인다면 민초들에게는 대동축제가 될 것이고, 수많은 소작인들을 관리해야 하는 자기네한테도 민심을 어루만져 주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는가.
종원과 권속들이 많은 이참공파(吏參公派) 원손가인 파서리 쪽과 연대하기가 난망하다면 지손계인 자기네 동산리 쪽에서만이라도 바다처럼 일망무제로 펼쳐져 있는 응천 강변의 자기네 도구늪들에 산재해 있는 늪지대에 지천으로 자라나서 밀림을 이루고 있는 갈대와 억새풀 베기 실력을 서로 겨루게 하여 푸짐하게 상을 주고, 술과 기름진 음식들을 장만하여 주린 창자를 실컷 채우고 난 뒤에 풍악을 울리면서 한바탕 대동축제를 벌이게 한다면 이곳 <감내 게줄 당기기>보다 못하란 법이 없지 않겠는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길을 재촉하면서도 중산의 머릿속에서는 사방팔방에 널려 있는 문중 토지와 집안의 대소사 문제에 대한 생각이 그렇게 끊임없이 고개를 들고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는 용화당 할머니의 조언을 들어가며 방만한 집안의 대소사를 직접 처결하시던 부친마저도 나날이 피폐해져 가는 이 시대를 탓하며 세상일에 대해서는 아예 등을 돌린 채 옛 문우들을 찾아 서원 순례길에 나서거나, 숫제 명산대천을 찾아 팔도강산을 유람하고 다니는 형편이니, 문중의 크고 작은 일이며 집안의 대소사는 모두 중산 자신의 차지가 되고 만 것이었다.
중산 일행이 싸전, 옹기전들이 즐비한 저자 거리를 저만큼 옆에 두고 시야가 탁 트인 들판 길로 나서자 대껄 마을과 반촌 마을인 송정리 (松亭里) 일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서둘러 길을 재촉하노라니 올망졸망 촌락을 이룬 인가들 사이로 마을 이름값이라도 하려는 듯이 푸른 대나무 숲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대껄 마을이 먼저 그들을 맞이하였다.
대껄을 지나자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송정리 마을이 나타났고, 그 마을을 빠져 나가자 멀리 감내들을 안고 흐르는 감내천이 한눈에 들어왔다.
중산은 말고삐를 당겨 걸음을 늦추며 사방을 둘러본다. 그만그만한 마을들이 듬성듬성 늘어선 푸른 들판이 살아 있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시야 가득 넘실거리며 다가서는 것이다. 오른쪽으로는 임진왜란 때 의승병을 이끌고 평양성 탈환에 큰 공을 세웠던 사명대사의 탄생지가 있는 무안면으로 가는 신작로가 한창 벼들이 자라고 있는 들판을 가로질러 길게 허리띠를 펼쳐 놓은 듯이 뻗어 있었고, 왼켠으로는 지난날 밀양 관아 별포군(別捕軍)의 군사 훈련장으로 쓰였던 응천 강변의 진장(陣場) 벌판이 시야 끝까지 펼쳐져 있었다.

정대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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