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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을 그치는 방법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2019-06-24 오전 11:33:57]
 
 
 

누구나 지나 온 삶을 돌이켜 보라. 생의 어느 한 순간에 내 존재를 스쳐 간 수많은 아픔과 고통과 좌절들이야말로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지금의 나를 나일 수 있게 해 주는 소중한 감로(甘露)였고 동반자였다.


그때 그 아픔이 없었다면 어떻게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을까. 모든 아픔들, 모든 고통과 좌절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내 삶의 성장과 성숙을 가져다준다. 어떤 것들은 내가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을 만큼 성장을 가져다 준 것도 있고, 또 어떤 것들에서는 도저히 그 아픔 속에서 무슨 깨달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좋지 않은 기억만을 가져다 준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기억 또한 어떠한 방법으로든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분명한 기여를 했으며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방법으로 나를 도왔다.


괴로움을 다스리는 명상 작성자 ‘법상’의 말을 빌리면 인생의 어느 때가 되고, 내적으로 어느 정도 삶의 통찰이 깊어지게 되면 그 때의 그 아픔이 나에게 어떤 성장을 가져다주었는지,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아픔 없는 삶, 괴로움 없는 삶, 순탄한 삶, 우리가 꿈꾸는 삶은 그런 삶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그런 삶 속에는 깨우침도, 성숙도, 지혜도, 자비도 꽃피어나기 어렵다.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고,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는 삶이란 고작해야 우리에게 어리석음과 얕은 정신과 공허한 내면을 가져다 줄 뿐이다. 자녀를 망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원하는 대로 다 해 주는 것이란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넘어져서 어지간히 피가 나더라도 “일어나자. 일어날 수 있어”하고 응원을 해 주셨을지언정 호들갑스레 달려와서는 일으켜주고 옷을 털어주지는 않으셨다.


우리의 삶에서 어떤 문제가 생겨났다면 그것은 우리가 삶에서 어떤 배울 것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 의미를 깨달을 수도 있고, 때로는 그 의미가 너무 깊고 심오하여 깨닫지 못하는 수도 있지만 존재의 깊은 곳에서는 그 의미를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문제나 아픔을 만났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언제나 그 상황, 그 문제를 전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며 따뜻하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듬어 주고 포용하는 일이다. 그 깊은 의미를 찾고자 애쓸 필요는 없다. 내 깊은 곳에서 알아서 깨달을 것이고, 알아서 이끌어 갈 것이니 그저 믿고 맡기면서 감사하게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보통 사람들이 삶의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그 문제를 향해 취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회피이며 둘째는 투쟁이다. 회피는 괴로움과의 대면에 대한 두려움이다. 괴로움을 피해 도망칠 곳을 찾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나 다른 관심사나 일을 찾아 나서면 잠시는 그 문제를 잊은 듯해도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고 인연을 만나면 다시 되살아난다. 또 어떤 사람은 그 괴로운 문제를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애를 쓴다.


괴로운 문제와의 투쟁을 선포한다. 괴로움을 향해 화를 내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기도나 수행을 통해 괴로움을 이겨보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물론 전자보다는 조금 더 낳은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이 방법 또한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다. 기도나 수행은 그 문제를 없애기 위해, 그 문제와의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무기 같은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몸에 병이 들었을 때 그 부분을 창으로 찌르고 칼로 자르는 상상을 하면서 그 부분의 병이 사라지기를 바라기도 하고, 또 어떤 수련단체에서는 이 몸이 있기 때문에 괴로움이 있는 것이라며 무아를 증득하려면 몸을 없애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몸을 칼로 자르고 폭탄으로 터치는 등 몸을 해치는 각종 방법을 동원해 상상으로 몸을 죽여 없애라고 권하기도 한다. 이 두 방법은 모두 지혜로운 중도의 길이 아니다.


부정하면서 회피하고 도망치려는 것이나 그 문제와의 투쟁을 통해 이겨내려는 것 모두 극단의 방법일 뿐이다.


삶에서 부딪치는 그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지혜로운 중도의 길은 회피하거나 투쟁하는 양 극단을 떠나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고(止) 가만히 지켜보는 것(觀)이다. 아픔이 오면 아픔이 오도록 그저 내버려 두라. 아픔이 내 존재 위를 스치고 지나가도록 그저 놔두고 다만 어떻게 왔다가 어떻게 스쳐지나 가는지를 묵연히 바라보기만 하라.


아픔을 나와 둘로 나누어 놓고 나면 아픔으로부터 도망을 치거나, 아니면 싸워 이기거나 둘 중 하나의 방법을 쓸 수밖에 없지만, 아픔을 나와 둘로 나누지 않고 내 존재의 일부분으로, 내 삶의 하나로써 가만히 포개어 놓고 나면 더 이상 아픔과 싸울 필요도 도망 칠 필요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아픔과 괴로움과 좌절을 다루는 중도적인 수행방법이다.


사실 수행의 길, 명상의 길, 영적인 구도의 길은 괴로움이 없고 항상 즐거움만 있는 그런 길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명상을 하면 괴로운 일이 사라지고, 장애가 사라지고 항상 즐거운 일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오히려 구도의 길 위에는 온갖 가시밭길이 놓여 질 수도 있고, 일반인들 보다 더 큰 아픔과 좌절과 슬픔을 겪어야 하는 수도 있다. 아픔과 괴로움을 대항해 싸우려 하지도 도망치려 하지도 않으니 오히려 그들이 물밀듯 밀려들어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구도의 길을 돕기 위한 법계의 배려요, 신의 사랑이고, 붓다의 자비이다. 사실 괴로움에 부닥칠 때면 감정을 그치기 어렵다. 하지만 감정을 드러낸다고 괴로움이 소멸되는 것도 아니므로 이왕이면 감정을 멈추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 되는 것이다.

도엽스님/창원반지정사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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